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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밝은 밤>, 최은영 장편소설
    2023. 7. 22. 09:05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 소설, 밝은 밤 

     

    <밝은 밤>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문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2000년대까지 여성 4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오랜 시간을 지나는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매우 담백함과 간결함을 주는 소설이다. 증조모를 시작으로 나로 이어지는 '과거'와 나를 시작으로 증조모로 향하는 '현재'가 교차하는 소설로 지연이가 외할머니(박영옥)로부터 전해 듣는 증조모(이정선, 삼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현재의 지연이는 할머니로부터 자신과 너무 비슷하게 생긴 증조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위로한다. 그리고 이는 할머니와도, 자신과도 사이가 좋지 않은 엄마(길미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백 년의 시간을 감싸 안으며 이어지는 사랑과 숨의 기록은 읽는 모두를 그녀들의 삶에 닿게 만든다. 담담하게 전하는 그녀들의 삶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밝은 밤>을 통해 모두 위로받기를 바란다.    

     

     

     

     

    밝은 밤 표지

     

     

     

     

    <밝은 밤> 줄거리

     

    2017년 1월 폭설이 내리는 날, 서른두 살의 지연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후 희령 천문대 연구원 채용에 합격 후 서울을 떠나 희령으로 내려간다. 익명으로 살고 싶은 지연은 열 살 이후로 왕래가 전혀 없었던 외할머니 영옥과 희령에서 재회한다. 할머니는 단번에 외손녀인 지연을 알아보았지만, 거리를 유지하며 지연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자식의 이혼을 수치스러워 하는 가부장적이고 가식적인 아버지와 딸의 상처보다는 늘 사위 편을 들었던 구시대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엄마(길미선)밑에서 늘 외로웠던 지연은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 더군다나 할머니에게조차 연락을 끓어버린 엄마였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지연은 할머니 영옥과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많이 닮은 흑백사진 속 증조모(이정선, 고향 명인 삼천으로 불림)를 보게 되고, 할머니를 통해 증조모와 그의 친구 새비 아주머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증조부의 조상은 박해를 당하던 천주교 신자였다. 증조부(박희수)는 열아홉 살에 부모의 뜻을 어기고 천주의 뜻을 따라 열일곱 살, 백정의 딸로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증조모(이정선, 삼천)를 데리고 개성으로 떠난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강제 연행을 피할 길은 증조부를 따라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병든 어머니를 버리고 돌아서는 증조모에게 고조모는 "다음 생에는 당신이 딸로 태어나겠다"는 약속을 하며 손을 놓아준다. 병든 고조모는 증조부의 부탁을 받은 새비 아저씨의 돌봄 속에 증조모가 개성으로 떠난 지 열흘 만에 숨을 거둔다. 

     

    낯선 땅 개성에서 백정의 딸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모두 증조부와 증조모에게 등을 돌린다. 경멸과 멸시 속에서 증조모(삼천)는 홀로 외로움과 사투를 벌인다. 일본군에게 땅을 모두 빼앗긴 새비 아저씨의 가족이 개성으로 오게 되고, 증조모는 평생의 친구인 새비 아주머니(새비로 불림)를 얻게 된다. 한편 젊은 객기로 무작정 증조모를 구원한 증조부는 백정의 딸인 '증조모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에 마음속의 증오를 품는다. 증조부의 무관심 속에서 증조모는 외할머니인 영옥을 낳고, 새비 아주머니는 희자(영옥보다 3살 아래, 1942년생)를 낳으며 가족처럼 의지하며 개성의 고된 삶을 이어간다.

     

    모두의 반대에도 끝내 일본으로 돈을 벌러 떠났던 새비 아저씨는 1950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떨어진 해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그해 10월 기적처럼 개성으로 돌아온다. 결국 폐병에 걸린 새비 아저씨의 치료를 위해 새비 아저씨의 가족은 고향인 새비로 떠나며 증조모와 새비는 이별을 하며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몇 년 후 새비 아저씨가 죽고, 자신의 오빠가 사상범으로 몰려 총살당한 후 시어머니에게 쫓겨난 새비 아주머니와 희자는 개성으로 잠시 피신을 온다. 새비 아주머니아 희자는 고모님(명숙 할머니)이 있는 대구로 떠나고, 증조모와 새비 아주머니는 또 한번 이별한다.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떠난 증조부와 증조모, 영옥은 새비 아주머니가 있는 대구의 명숙 할머니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손끝이 야무진 영옥은 명숙 할머니에게 재봉틀과 바느질을 배우고 명숙 할머니 집에서 새비 아주머니, 희자와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국군에 자원 입대했던 증조부가 1953년 휴전이 선언된 후 돌아오고, 자신의 부모님을 찾아 희령으로 가자고 해서 또다시 명숙 할머니, 새비 아주머니, 희자와 이별하게 된다. 

     

    증조부의 부모님은 희령에 없었고, 증조모와 영옥은 새비 아주머니와 희자에게 그리움을 편지로 전한다. 영옥이 스무 살이 되던 해 희자는 대구의 명문 여고에 입학했고, 영옥은 증조부가 소개한 길남선과 결혼한다. 증조모의 걱정처럼 증조부와 많은 부분이 비슷한 길남선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고단한 결혼 생활로 영옥은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해갔으며 희자에게도 명숙 할머니에게도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 1959년 9월 할머니는 엄마 (길미선)을 출산했다. 그리고 증조부의 허락하에 길남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속이고 중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생부의 호적에 엄마 미선을 올리고 평생 낳아준 엄마로만 살게 된다. 

     

    길남선이 속초로 떠난 후 할머니는 희자가 이화여대 수학과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편지를 받는다. 가장 좋은 천으로 옷을 만들어 선물로 보내며 자신의 불행을 숨긴다. 그리고 길남선이 떠난 것에 딸의 못남을 탓하는 증조부에게 "우리 없는 곳으로 가서 죽어버리라"는 순간적 진심이 담긴 저주를 퍼붓고, 증조부는 얼마 후 속초에서 교통사고로 숨을 거둔다. 증조부의 장례 후 새비 아주머니가 희령을 다녀간 후, 영옥은 십 년이 지나도록 얼굴을 보지 못한 희자에게 그간의 일을 모두 적어 편지를 보낸다.  

     

    1963년 1월 희자의 전보를 받은 증조모는 대구로 향한다. 대구로 온 지 사흘이 지난 새벽, 새비 아주머니는 증조모와 희자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장례를 치른 희자는 증조모를 따라 희령으로 영옥과 함께 지내다 다시 서울로 갔고, 방학 때마다 내려왔다. 그러나 약혼자와 혼사를 깨고 독일로 유학가겠다는 희자를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을 지지해 주지 않는 희자도 서운해하며 둘은 사이가 멀어진 채 희자는 독일로 떠났다.

     

    지연은 '조국을 빛낸 해외 동포' 시리즈로 방영된 다큐 프로그램에서 암호학자 김희자 박사를 보고 수소문해 그녀에게 메일을 보낸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연은 할머니를 통해 엄마의 삶에 대해 듣게 되고,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딸을 (언니: 지영) 잃은 후 자기 탓이라 여기고 살았을 엄마를, 지연이 멀게 느끼는 엄마만큼 할머니 역시 엄마에게는 멀리 있는 엄마였음을 깨닫게 된다. 대전의 연구소로 이직하게 된 지연은 2018년 3월 희령을 떠난다. 그리고 김희자 박사의 메일을 받은 지연은 희자를 마중하기 위해 다시 희령으로 향한다. 버스터미널로 가기 전 들른 할머니의 집에는 엄마가 할머니에게 건넨 액자가 놓여 있다. 

     

     

     

    <밝은 밤> 감상평 

     

    슬픔을 위로하는 밝은 밤 

     

    "언젠가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그럴 거야."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증조모 이정선(삼천), 할머니 박영옥, 엄마 길미선, 외손녀 이지연은 모두 그런 삶에서 배제되었다. 그들은 모두 사랑과 배려가 없는 인생이 자신의 탓이라 여겼고, 그렇게 체념하고 살아가는 것이 사는 방법이라 믿었다. 그 결핍과 상처는 대를 이어 내려왔고, 딸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했던 말들은 그녀들을 서로에게 멀어지게 했다. 그래서 <밝은 밤>에는 흔히 愛憎(애증)으로 표현되는 정형적인 모녀 관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엄마지만 무조건 자식을 이해하지도 않고 쉽게 다가가지 못하며, 그래서 불편하고 애석한 모녀 관계만 남았다. 그렇지만 증조모와 닮은 외손녀 지연을 통해 영옥은 지나온 과거로 닿고, 자신과 닮은 증조모의 삶과 자신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할머니를 통해 지연은 현재를 살 수 있게 된다. 할머니가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다"고 말해주면서, 지연이 "그건 할머니의 탓이 아니다"고 말해주면서 서로의 숨이 되고 위로가 된다.  

     

    삶은 각자의 몫이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의 생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 <밝은 밤>은 자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야 하는 사람들을 대신하는 소설이다. 이미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애초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어서 쉽게 나를 버린 사람들, 나를 버려 내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말한다.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에게 말을 하라고. 결국 삶은 자기 자신의 위로가 가장 절실하다. 지연은 할머니를 통해 비로소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었고, 엄마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다. 희자 할머니를 만나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할머니의 과거를 현재로 이어줄 수 있었고, 놓아버린 엄마의 끈을 다시 할머니에게 이어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의 크기는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들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삶을 온전히 감내하는 무한의 힘을 감추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아스라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생에서 나는 나를 용서하고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이제는 안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녘 떠오를 태양을 기다리는 두근거림 같이 함께 웃고 즐기고 따뜻함을 나누는 '좋은 순간'을 기다리는 밤이다. 귀를 기울인다. 나에게 오래 하고 싶었던 말을 해주고 싶다. 내 몫은 나로부터 사랑이 시작되어야 한다, 시작은 반드시 나여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밝은 밤이다. 과거의 수많은 나를 만나러 가야 한다면 그때마다 이 책을 꺼내보아야겠다. 누구라도 위로가 필요한 순간, 밝은 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밝은 밤> 속 문장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넣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p. 82)

     

    나는 바깥에서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집에 와서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울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뒤 집으로 가는 아이였다.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방어할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당하고 하던 내 존재를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도 있었던 것 같다. - (p.95)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는 눈빛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끝이 날 까봐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우리는 싱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을 내려왔다. - (p.137)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 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 (p.156)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늘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p.156)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뒤에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 악의 없는 웃음을 보이면서 다른 마음을 품는 사람들이 흔하고 흔했다. 그런 모습은 어쩌면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성질인지도 몰랐다. - (p.195)

     

    돌이켜보면 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늘 그런 것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함께 웃고 즐거워하고 따뜻함을 나누는 시간을 그대로 누리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던 것 말이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있었으니까. - (p.200)

     

    "언젠가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그럴 거야." - (p.230)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진심 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체념하는 사람과, 다시는 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과, 왜 저렇게까지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드러내?라느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 (p.252)

     

     

    나는 머릿속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평범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 두드러지지 않은 삶, 눈에 띄지 않는 삶, 그래서 어떤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평가나 단죄 받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동그라미가 아무리 좁고 괴롭더라도 그곳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엄마의 믿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p.271)

     

     

    나는 그와의 결혼으로 내가 지닌 문제와 내가 가진 가능성으로부터 동시에 도망치고자 했다. 나의 원가족으로부터,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처로부터, 상처받을 가능성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사람을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고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감정적인 가능성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미지근한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 있었을까. 이혼 후 내가 겪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은 남편의 기만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의 결과이기도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보니, 그중 나를 더 아프게 한 건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이었다. - (p. 298~299)

     

    나는 나를 너무 쉽게 버렸지만 내게서 버려진 나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략)  나를 함부로 대하는 배우자를 용인했던 나와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어 스스로를 공격하기 바빴던 나에게도 다가가서 귀를 기울인다. 나야. 듣고 있어. 오래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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