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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고 웃는 감동적 소설 읽기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2023. 4. 28. 13:30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열 살 소년이 가슴에 간직한 <아름다운 정원> 

    가족의 해체를 자신의 희생으로 봉인한 소년의 성장기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 (p.350)

     

     

     

    나의 아름다운 정원 책 표지

     

     

     

     

    목차

     

    1997년 인왕산 허리 아래
    1978년 첫 생일
    1979년 난독(難讀)의 시대
    1980년 황금빛 깃털의 새
    1981년 정원을 떠나며

     
     
     
     
     

    줄거리  

     
     

    독재와 권위가 일직선상에 놓인 가부장적인 1980년대 인왕산자락 청와대와 중앙청이 가까운 곳에 동구의 집이 있다. 국민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한글을 읽지 못한 열 살 동구는 학습부진아로 낙인찍혔다. 훈육과 사랑으로 가장된 폭력이 용인되고 묵인되는 세상에 동구의 집 역시 유약한 동구에게는 한마디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인내의 현장이다. 며느리 못 잡아먹어 안달인 동구의 유별난 할머니와 늘 노모의 편에 서는 가부장적이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아버지, 천성적으로 시어머니와는 안 맞지만 모든 구박을 감내하는 말이 없는 어머니가 동구의 가족이다.  딱 봐도 화목과는 영 거리가 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섯 살 터울의 여동생 영주가 태어난다.  늦둥이 영주는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동구네 집의 분위기를 바꿔 놓고, 동구 역시 영주를 살뜰히 보살피며, 영주를 통해 지친 일상을 위로받는다. 

     

     

    순수하고 사려깊지만,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동구는 세 돌이 되기도 전에 스스로 한글을 읽는 총명한 영주를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무능함에 절감한다. 그러나 그런 동구에게도 햇살 같은 존재가 생긴다. 바로 3학년 담임 선생님인 박영은 선생님이다. 구박과 멸시에 익숙한 동구가 사실은 "난독증"을 앓고 있음을 부모님에게 알리고, 매일 방과 후 한글을 가르쳐 주면서 동구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따뜻하고 착한 심성을 칭찬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흠모의 마음을 품게 된다. 그렇게 박영은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동구의 난독증은 나날이 좋아지고, 동구는 인생의 봄날을 만끽한다.     

     

     

    그렇게 4학년이 된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과 나이 차이를 일생의 가장 큰 슬픔으로 여긴다. 더불어 자신의 교육을 핑계 삼아 박영은 선생님에게 치근덕거리는 담임 오준근 선생님으로 인해 "나이 어림"을 한탄한다. 그러다 고대 법대 출신 고시생인 친근하고 덩치 큰 주리 삼촌을 대동해 오준근 선생님을 혼내주며 정의를 실현한다. 비록 친구는 없지만 박영은 선생님, 주리 삼촌, 영주가 있어서 동구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바라보고 다정하게 대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1980년 토요일 저녁,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과 주리 삼촌, 그리고 이태혁 (주리 삼촌의 후배, 박 선생님과 같은 노래 서클 동지) 이 마주한 술자리에 동석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이후 계엄령 해제, 유신헌법 철폐가 미뤄지고 있는 어수선한 정세 속에 세 사람의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오고간다.  다시 민주화의 거센 요구의 불길로 뛰어들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박영은 선생님은 끝내 눈물을 보인다. 소주 두 잔에 취기가 오른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에게 안겨 취중 고백을 하고, 결국 주리 삼촌의 바지에 토사물을 쏟으며 쓰러진다. 동구에게 역사적인 사건 10.26과 12.12는 그저 탱크를 구경할 좋은 기회이며 실감할 수 없는 어른들의 삶이었을 뿐이다.  

     

     

    그날 이후 할머니 댁에 내려간 박영은 선생님은 실종되고,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이라면 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데모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박영은 선생님이 사망했다는 주리 삼촌이 전해준 소식을 동구는 애써 부정한다.  동구의  삶에 빛이었던 박영은 선생님과의 이별을 시작으로 동구의 삶은 파이고, 깨지는 상처를 더 해간다.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피해 감나무를 구경하던 동구는 순간 목마를 태운 영주를 놓치게 되고, 영주는 그렇게 눈을 감는다. 

     

     

    동구 할머니의 "자식 잡아먹은 재수 없는 년"이라는 고함과 비난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이를 견디지 못한 동구의 엄마는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이 모든 일을 지켜보던 동구는 예전 박영은 선생님이 알려준 것들을 하나하나 되새긴다. 어른들의 방식과 어른들을 이해하는 법. 마침내 동구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할머니에게 둘이 노루 너미에 가서 살자고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동구는 추억이 가득한 삼층집의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 인사를 고한다. 

     

     

     


     

     

     

    아버지는 하루도 또박또박 걸어 들어오는 날이 없이 지겹게 술을 마셨다. 생각도 하기 싫지만 영주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장 직접적인 책임자는 나였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의 방향 틀린 증오심과 식구들의 방황이 내 잔등을 후비는 갈고리, 꼬챙이처럼 괴로웠다. - (p.304)

     

    우리 가족들은 마치 신호등이 고장난 네 갈래 길에 각각 서 있는 당황한 사람들처럼, 서로 말을 걸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로 바라만 보게 되었다. 우리의 소통이 엉키지 않도록 요술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는 기다리게 하고, 누군가는 직진하게 하고, 누군가는 좌회전하도록 지도하던 우리의 푸른 신호등은 영원히 잠들어버렸다. 우리는 신호등 없이는 교차로를 지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 (p.305)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살아간단다. 네 힘으로 당장 고칠 수는 없어. 중요한 건 네게 나중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잘하는 거야. 언젠가 박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 (p.332)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이 한 몸을 던질 것이라 약속할 수 있지만, 어리석은 나는 몸을 던져 그들을 지켜야 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하나씩 하나씩 그들을 잃어갔다. 이제 마지막 남은 나의 사랑하는 이, 나의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 순간이 왔다. - (p.333)

        

    남을 이해하려면 네가 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하거든. 어렵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깊이깊이 생각해봐야 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 특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일수록 정성을 다해서 더 깊이 생각해야 해. - (p.336)

     

    세상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편 그 사람에 맞춰서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다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p.341)

     


     

     

     

    감상평 

     

     

    난독증을 겪은 동구에게 닥친 이 불행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1977년~1981년 역사의 격변기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동구에게 이 시간은 동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인생의 암흑기'입니다. 믿고 따르고 흠모하던 선생님의 실종과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동생을 죽게 만들고 가족을 해체의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이 동구를 자면서도 울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아무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지 못하는 동구는 "그 시기, 마음의 난독증"을 앓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것들, 알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동구는 하나씩 알아가며 스스로 깨달아 갑니다. 한글을 띄엄띄엄 읽기 시작하면서 눈을 뜬 것처럼 선생님이 알려준 어른들의 세계, 어른들을 이해하기 위한 동구의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밝음만 존재하던 순진무구한 동구의 세상은 이제 더 이상 밝지 않습니다. 어둡고 습하고 두려운 곳에서 동구는 혼자 성장합니다. 광인(狂人)이 되도록 상처 입은 어머니를 이해하고, 노모와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뇌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마침내 어머니를 미치게 만든 할머니마저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동구는 가족의 해체 위기에서 막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동구는 영주 없는 살아가는 일, 박 선생님 없이 살아가는 일, 가족과 떨어져 할머니와 단둘이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일에 적응해야 합니다.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던져 그들을 지켜내려고 합니다. 동구가 동경하던 삼층집의 '아름다운 정원'은 동구가 동경하는 모든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곳에 모든 추억을 봉인한 채 동구는 문을 닫습니다. 동구의 유년기는 그렇게 황금빛으로 포장된 채 막을 내립니다. 

     

    어린 시절의 슬픔은 너무 빨리 아이를 자라게 만듭니다. 어른 아이. 그 내면에 감춰진 슬픔은 상흔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박 선생님을 통해 어른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동구는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될 것입니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기다려 주는 이가 없는 세상에서 동구는 홀로 어른이 되어 갈 것입니다.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가족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자신의 희생으로 갚으려는 어른스러운 동구 때문에 내내 마음이 쓰립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동구가 박영은 선생님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던 그 짧은 시간이 동구에게는 행복한 유년 시절의 유일한 기억일 것입니다. 어쩌면 동구 인생의 가장 행복한 추억이겠지요. 가족을 위해 희생을 택한 순간, 동구는 없습니다. 책임지려고 애쓰는, 가족을 위해 감내하는 동구만 남을 뿐입니다. 어른 아이, 동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나는 도저히 이 유년 시절을 황금빛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편 그 사람에 맞춰서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다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라는 말처럼 이 모든 책임을 떠안은 동구가 가여워 미치겠습니다. 몰랐던 어른들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동구의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난독증을 앓던, 아무것도 몰랐던 소년 동구가 부디 어른이 되어서도 아프지 않기를, 그의 희생이 공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죽음은 너무 빠르고, 남은 이들은 너무 아픕니다. 그래서 죽음은 어린 나이에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가장 큰 불행입니다. 불행의 씨앗이 퍼지지 않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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